17세기에 찍힌 ‘인스타그램 스냅샷’ : 미국 신흥 부호들은 왜 할스에 열광했나?
"17세기에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가장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화가는 단연 프란스 할스였을 것이다."
전시장 안 '예술의 비즈니스' 섹션. 렘브란트의 반대편, 공기의 흐름이 사뭇 달라지는 지점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가장 논쟁적인 천재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1-1666)를 마주한다. 이번 전시에서 예상 밖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그의 것이었다.
1. 톨레도가 피드에 올린 단 한 점의 찰나: <가족의 초상>
이번 전시에서 할스의 작품은 단 한 점뿐이지만, 그 임팩트는 렘브란트의 유화 두 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이 가족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공원 나들이 중에 찍어 올린 '스냅샷'을 연상시킨다.

렘브란트의 인물들이 거대한 서사 속에 머무는 주인공 같다면, 톨레도의 이 가족은 놀랍도록 생생하다. 인물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고, 아이들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할스의 이 경쾌한 초상화는 당시의 경직된 전통을 깨뜨린 파격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완벽하게 정제된 포즈 대신, 삶의 가장 활기찬 찰나를 캔버스라는 피드(Feed) 위에 그대로 업로드해버린 듯하다.
2. 도금 시대 미국 거부들의 '원픽': 성공한 우리의 얼굴
할스가 사후 200년간 잊혔다가 19세기에 재평가되었을 때, 가장 열광적으로 지갑을 연 이들이 바로 미국의 신흥 부호들이었다.
할스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중 거의 유일하게 교양 있는 인물들이 활짝 웃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감히 박제할 수 없는 '생의 에너지'를 드러낸 도발적인 시도였다.
200년이 지나 바다 건너 신대륙. 철강왕과 금융가 등 자수성가한 미국인들에게 렘브란트가 '엄숙한 신전'이었다면, 할스는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성공한 시민의 에너지' 그 자체였다.
당당하고 현세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네덜란드 중산층의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강력한 동질감을 느꼈다. 톨레도 미술관을 비롯한 미국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할스를 수집한 것은 그들의 가치관과 시대정신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3. 런던에서의 전율, 서울에서 재회하다
개인적으로 할스는 각별한 화가이다. 수년 전, 런던 월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에서 만난 <웃고 있는 기사>가 준 강렬한 인상 때문에 그의 이름이 제대로 각인되었다.

26세 청년의 자신만만한 포즈와 눈빛, 위로 치켜 올라간 콧수염과 묘한 미소. 빈센트 반 고흐가 "할스에게는 분명 27가지의 검은색이 있었을 것"이라며 경탄했던 그 눈부신 테크닉을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4. 파격을 넘어 현대성으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대적 감각의 시작점
즉흥적으로 보일 만큼 거칠고 자유로운 할스의 붓질은 훗날 '현대 미술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1832-1883)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술잔을 든 채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는 노파와 어깨 위의 부엉이. 여기서 할스의 붓질은 형태 묘사를 넘어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된다. 마네는 할스의 화풍을 연구하기 위해 직접 네덜란드로 향했고, 그 여행 직후, 할스의 화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놓은 결실이 바로 <Le Bon Bock(맥주 잔을 든 남자)>이다.
마네는 "할스는 이미 그 자체로 현대적이다"라고 단언했다. 대상의 매끄러운 묘사보다 '화가의 거친 붓자국'이 주는 생동감에 집중했던 할스의 파격은, 200년 뒤 마네를 거쳐 인상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의 뿌리가 되었다.
에필로그: 빛의 깊이와 삶의 환희
렘브란트가 빛으로 인생의 '깊이'를 파고들었다면, 할스는 빛으로 '현실의 활기'를 집어냈다.
톨레도 미술관 컬렉션 속 두 거장의 2:1 작품 구성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위대한 시선—내면의 성찰과 세상의 환희—을 나란히 놓아두는 완벽한 안배이다.
톨레도의 가족과 런던의 기사, 그리고 베를린의 노파를 관통하는 할스의 '웃음'이 이번 전시를 관람한 모든 이들의 일상에도 경쾌한 스냅샷 한 장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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