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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 무료 전시 추천 ㅣ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관람 전 꼭 알아야 할 포인트

by artstrollnote 2026. 6. 18.

자유로운 영혼, 마침내 산을 품다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터질 듯한 빨강,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랑으로 칠해진 거대한 '산'의 이미지가 먼저 스쳐 지나갈 것이다. 대한민국 미술 시장에서 확고한 가치를 지닌 블루칩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 거장의 예술적 시작점이 사실은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구축된 이성적인 구성을 보이는 합판 부조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평생 안정된 궤도보다는 예술적 독립만을 갈망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026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회 포스터-ArtStrollNote
전시회 포스터,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되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전은 유화 115점을 포함한 17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총망라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단순히 자연을 아름답게 추상화한 대가로서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며 '순수 조형의 본질'을 사수하려 했던 인간 유영국의 태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 기획 의도이다.

 

전시장 문을 열기 전, 독자들이 반드시 장착해야 할 유영국의 단단한 조형적 서사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2026년 10월 25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I.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성정, 시험 거부와 유학

유영국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타협 없는 자립'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 미술부에서 처음 붓을 잡았던 소년 유영국은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둔 채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일본인 교사의 부당한 체벌과 모욕에 분노하여 마지막 졸업 시험을 전면 거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적 통제에 무릎 꿇지 않고 퇴학을 감수했던 이 일화는 그의 대쪽 같은 성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식 졸업장이 없던 그가 일본 도쿄의 '문화학원'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자 운명이었다. 문화학원은 학력이나 관습의 제약 없이 가장 전위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하던 학교였다.

 

훗날 그는 거창한 예술적 야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이 미술 같아서" 화가의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안정된 궤도를 스스로 이탈하더라도 예술적 독립을 선택했던 이 과감한 성정은, 훗날 그가 한국 화단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상 세계를 꿋꿋이 구축하는 단단한 밑거름이 된다.


II. 도쿄에서 마주한 신흥 미술, 그리고 기하학적 추상 <Work R3>

유영국이 유학을 떠난 1930년대의 도쿄는 서구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이 실시간으로 유입되던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그는 신흥 미술 운동을 주도하던 '독립미술협회'와 '자유미술가협회'에 참여하며 조형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일반적으로 당대 화가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캔버스에 재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미술에 입문했던 것과 달리, 유영국은 유학 시절부터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재현의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는 서구의 전위적 표현 방식에 눈을 떴고, 점·선·면이라는 순수한 조형 요소 자체에 깊이 매료되었다.

 

Work R3, 1938, 유영국 作 -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협회상 수상작품-ArtStrollNote
Work R3, 1938, (1979년 유리지 재제작), 혼합재료, 65x90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Yoo Youngkuk Art Foundation  ( 이미지 출처: Google Arts & Culture 화면 캡처).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 출품, 자유미술가협회 협회상 수상작

 

그 치열한 실험의 정점이 바로 도쿄 문화학원을 졸업하던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자유미술가협회상'을 수상한 합판 부조 작품 《작품(Work R3)》이다.

당시 캔버스를 벗어나 평면 위에 나무판을 자르고 배치하는 부조(반입체조각, Relief) 실험은, 일본 현지 전위 화단 내에서도 막 태동하던 최첨단의 시도였다. 화면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자연의 재현도, 화려한 붓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유기적인 선들이 조합하여 만든 리듬. 흑과 백의 대비 속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의 합판 파편들이 평면 위에 대담하게 겹쳐지고 맞물리며 독특한 레이어를 형성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화려한 색채 대신 모노톤의 파편들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순수한 질서, 조명이 비추었을 때 입체적인 단차가 만드는 '미세한 그림자의 선'마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청년 유영국이 이미 20대 초반에 동시대 일본 전위 미술의 실험 현장에서 오브제의 물성과 조형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앞장섰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III. 같은 자연, 다른 추상 - 김환기와 유영국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유영국은 본격적으로 한국 모던아트의 새벽을 깨우는 주역으로 활약한다. 1948년, 그는 김환기, 이중섭, 유강열 등 당대 최고의 전위적 동료들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한다. "새로운 사실(Realism)을 표현하겠다"는 이들의 기치는 대상을 똑같이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유영국은 이 그룹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화단에 '추상'이라는 낯선 씨앗을 심는 거대한 실험을 지속한다.

직선이 있는 구도, 1949, 유영국 作 - ArtStrollNote
직선이 있는 구도, 1949, Oil on Canvas, 53x45.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Yoo Youngkuk Art Foundation. 훗날 전개될 산 연작 이전의 작품으로, 자연을 단순화한 형태와 구조로 탐색하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 유영국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가장 가까운 예술적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김환기와 비교해 보면, 동시대에 한국적 추상의 영토를 일구었던 두 거장은 '자연'이라는 같은 출발점을 공유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문법은 전혀 달랐다.

 

미술사학계는 동시대에 한국적 추상의 영토를 일구었던 두 거장을 두고, 김환기는 대지나 달항아리 같은 자연의 정취를 부드럽게 녹여낸 '서정적 추상'을, 유영국은 산과 바다의 구조를 반듯한 선과 면으로 구축한 '기하학적 추상'을 완성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김환기의 화면이 문학적 감수성과 자연의 서정성을 머금고 있다면, 유영국의 화면은 비례 관계를 통한 단단한 구조적 긴장감을 품고 있는 셈이다.

 

Work, 1999, 유영국의 절필作 - ArtStrollNote
Work, 1999, Oil on canvas, 105x105cm, 개인소장,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의 절필작

 

그렇게 유영국은 평생 연구했던 선과 면의 질서를 바탕으로, 마침내 자신만의 상징인 '산'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의 산은 일반적인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겨진 자연의 기억이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려 했던 예술가의 자유 의지가 응축된 심상의 형태에 가깝다.

 

이번 전시 제목 《산은 내 안에 있다》 역시 이러한 유영국의 예술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이 상징적 모티프가 어떤 색채와 구조로 변주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역대 최대 규모로 마련된 이번 회고전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산의 화가' 유영국을 넘어 그 산에 도달하기까지의 치열한 실험과 독립의 시간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마무리

1930~40년대에 걸쳐 철저하게 색을 아끼며 날카로운 이성의 비례와 기하학적 구조를 연구했던 유영국은, 1950년대의 혼돈을 지나 1960년대 전성기에 접어들며 비로소 고향 울진의 거대한 자연을 화면 안으로 끌어안는다. 젊은 날 심취했던 그 단단한 이성적 뼈대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영토 위에 극도로 감성적인 원색의 에너지를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사학계에서 유영국을 두고 "가장 차가운 기하학적 뼈대 위에, 가장 뜨거운 한국적 색채를 얹은 작가"라고 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거대한 진화의 서사를 머리에 담고 전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길 바란다. 이 글에서 짚어본 이 조형적 규칙들이 실제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어떻게 시각적 파동으로 변해 우리를 압도하는지, 그 생생한 현장의 목격담은 유영국 회고전 2편 [전시 리뷰]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 전시회 핵심 관람 포인트

 

①《Work R3》, 산 이전의 유영국을 만나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영국은 강렬한 색채의 ‘산’ 연작이지만, 그의 출발점은 기하학적 추상이었다. 1938년 작품 《Work R3》를 통해, 청년 유영국이 조형의 본질을 어떻게 탐구했는지 살펴보자.


② 기하학적 구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변화 읽기
초기의 선과 면, 구조적 질서는 훗날 유영국의 대표 모티프인 ‘산’으로 이어진다. 전시장에서는 추상이 어떻게 자연의 상징으로 발전해 가는지 그 흐름에 주목해 보자.


③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의 아카이브 함께 보기
유화 115점을 포함한 17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가 공개된다. 작품뿐 아니라 사진, 기록물, 가족들의 증언으로 제작된 영상 자료를 함께 살펴보면 ‘산의 화가’ 인간 유영국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전시회 정보 한눈에 보기

 

전시명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기간 2026.05.19(화) ~ 2026.10.25(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관람 시간 토·일·공휴일 10:00~19:00
화·수·목 10:00~20:00
금 10:00~21:00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