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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6월 서울에서 꼭 봐야 할 전시 ㅣ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by artstrollnote 2026. 6. 5.

‘하나의 시점’으로는 부족했다. 큐비스트들이 세상을 해체한 이유

‘대체 왜 사물을 이토록 못생기고 기괴하게 쪼개 놓은 걸까?’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누구나 마음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코와 눈의 위치가 흩어지고, 앞모습과 옆모습이 한 화면에 뒤섞인 큐비즘(Cubism; 입체주의, 1907~1920s)의 그림들은 언뜻 화가의 장난스런 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난해하고 파격적인 흔적들을 미술사의 커다란 타임라인 위에 올려놓고 보면, 인류의 시각을 완전히 뒤바꾼 거대하고 치밀한 혁신과 철학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19세기 말 카메라가 세상을 보이는 것과 똑같이 기록하기 시작한 순간, 화가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그려내는 일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번《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는 피카소를 중심으로 브라크, 들로네, 뒤샹-비용 등 약 54명의 작가, 112점의 작품이 선보이는 거대한 '큐비즘의 역사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세잔의 영향 아래 시작된 초기 실험에서 출발해, 형태의 완전한 해체를 거쳐 색채를 입고, 마침내 공간과 기계 문명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큐비즘의 약 20년간의 대장정이다.

 

목차 펼치기

1. 세잔의 영향과 초기 실험
2. 분석적 큐비즘과 형태 해체
3. 살롱을 점령한 큐비즘
4. 오르픽 큐비즘과 빛의 리듬
5. 전쟁 이후와 양식적 변주
◼ 전시 정보 및 예매 가이드
[에필로그] 1. 큐비스트, 세상을 새롭게 표현하다
[에필로그] 2. 현대미술의 심장, 퐁피두


1. 세잔의 영향과 초기 실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정면만 보지 않는다. 걸어가며 옆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보고, 기억 속 인상까지 함께 떠올린다. 큐비스트들은 질문했다. 왜 그림은 단 하나의 시점에 갇혀 있어야 할까?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여인의 흉상(Buste de femme)》은 훗날 큐비즘으로 이어질 변화를 보여주는 초기 실험 중 하나였다. 당시 화가들은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리는 가짜 입체(원근법)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이때 피카소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작업에서 중요한 힌트를 발견한다. 세잔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의 인상보다 사물을 이루는 구조와 질서, 그리고 그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다루어라"라고 말하며 자연 속 형태를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로 바라보았고, 후기 정물화에서는 서로 다른 시점이 한 화면 안에 미묘하게 공존하도록 배치했다.

 

피카소는 이러한 실험을 더욱 밀어붙이며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방식 자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인의 얼굴을 부드러운 살결이 아니라, 단단한 나무나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거칠고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 곧이어 등장할 큐비즘이라는 혁신의 씨앗이 이 작품안에 숨어있었다.

 


2. 분석적 큐비즘과 형태 해체

Pablo Picasso -The Guitar Player-ArtStrollNote
파블로 피카소 <기타 연주자> 1910, 캔버스에 유채, 100 × 73 cm © Centre Pompidou, MNAM-CCI/Philippe Migeat/Dist. GrandPalaisRmn

 

피카소와 당시 그의 단짝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는 대상을 사정없이 잘게 쪼개며 평면 위에 입체적인 사물의 표현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다. 앞, 뒤, 위, 아래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다 구겨 넣다 보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는 대상을 바라보며 축적하는 여러 시점의 경험을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담아내려 한 시도였다.

 

개인적으로, 과거 유럽의 어느 전시장에서 나란히 전시돼 있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비교하며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 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고야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시기 두 사람의 그림이 섞여 있으면 당시 평론가들조차 혼동할 만큼 유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자랑하려 한 게 아니었다.

 

카메라에 맞서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회화로 번역하기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형태 분석에 집중했기에 색채를 거의 쓰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다소 칙칙한 갈색과 회색조를 띤 것이 특징이다.

 


3. 살롱을 점령한 큐비즘

피카소와 브라크가 주로 작업실 안에서 실험을 이어갔다면, 레제(Fernand Léger), 메챙제(Jean Metzinger), 글레즈(Albert Gleizes) 등의 화가들은 이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왔다. 대중 전시인 '살롱'에서 큐비즘은 더 이상 소수 천재들의 실험이 아닌 하나의 미술 운동으로 성장한다.

 

특히 페르낭 레제는 인물과 사물을 기계 부품처럼 단순하고 강인한 형태로 재구성하며 산업화 시대의 에너지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말해, 증기기관차와 공장 굴뚝이 일상을 바꾸던 시대, 그는 현대 도시의 속도와 에너지를 회화의 언어로 번역하려 했다. 큐비즘이 단순한 형태 분석를 넘어 현대 도시와 기계 문명을 담아내는 언어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4. 오르픽 큐비즘과 빛의 리듬

Robert Delaunay_La Ville de Paris-ArtStrollNote
로베르 들로네 <파리 시(La Ville de Paris)> 1909–1912, 캔버스에 유채, 267 × 406 cm ©Centre Pompidou, MNAM-CCI/Georges Meguerditchian/Dist. GrandPalaisRmn

 

칙칙하고 난해해진 입체파에 화려한 색채의 숨결을 불어넣은 이들이 바로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와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부부다. 이들은 형태를 쪼개는 입체파의 논리를 가져오되, 그 안에 빨강, 파랑, 노랑 같은 강렬한 원색의 기하학적 형태를 채워 넣었다. 보색 관계의 강렬한 색들을 나란히 배치하면, 화면 속에서 빛이 스스로 소용돌이치며 리듬감을 만들어낸다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디지털 화면 속 네온 그래픽이나 모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들의 그림을 보고 음악적인 율동감이 느껴진다며 '오르피즘(Orphis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의 <우드니(Udnie)> 역시 무용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기하학적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며, 큐비즘이 단순한 형태 분석을 넘어 리듬과 시간성, 움직임까지 포착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5. 전쟁 이후와 양식적 변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입체파 화가들은 차가운 기계 문명을 목격하고 거대한 사상적 전환을 맞이한다.

조각가 레몽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의 <대형 말>은 이 시기 큐비즘이 3차원 공간으로 튀어나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준다. 뒤샹-비용은 동물(과거)의 시대에서 기계(미래)의 시대로 넘어가는 격변기의 에너지를 기하학적 조각으로 번역해 냈다.

 

피카소의 대형 무대막 <메르퀴르>는 1924년 발레공연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전쟁을 거치며 한층 성숙해진 피카소는 유기적인 곡선과 기호 같은 선을 활용해 무대 예술이라는 거대한 공간으로까지 양식적 변주를 완성해 낸다.

 

이렇듯 캔버스 위에서 시작된 큐비스트의 시각 혁명은 조각과 건축, 공연 예술로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다.

 


◼ 전시회 일정 및 관람정보

□ 전시 정보 및 예매 가이드
전시명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기간
2026년 6월 4일 ~ 10월 4일
장소
퐁피두센터 한화 (63빌딩 별관 G층)
관람 시간
화·목·금·일 10:00~18:00
수·토 10:00~21:00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만 19세~64세) 28,000원
💡 관람 팁
오디오 가이드는 전시장 내 QR코드로 무료 이용 가능

[에필로그] 1. 큐비스트, 세상을 보는 방식을 새롭게 표현하다

이제 전시장에 들어서면 더 이상 “왜 저렇게 그렸을까?”보다 “왜 이전 화가들은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마저 떠오를 지도 모른다. 큐비즘은 근대 미술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꾼 시각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 혁명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했다. '인간은 원래부터 하나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깨달았다. '하나의 시점으로는 세계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자면, 큐비스트들은 이전의 예술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발명했다기보다, '인간이 원래부터 세상을 인식하던 방식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번역해 낸 최초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화면 속에서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다.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넘겨보고, 여러 창을 동시에 띄운 화면을 바라보며, 기억과 경험을 겹쳐 대상을 인식한다. 100년 전 큐비스트들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대에 이미 그것을 캔버스 위에 구현해 냈던 것이다.

 

예술의 역할이란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보고 있었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세상을 다시 보여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2. 현대미술의 심장 퐁피두, 모더니즘의 신호탄을 서울에 쏘아 올리다

파리 퐁피두센터는 오늘날 파리를 넘어 전 세계 현대미술의 강력한 표준이자 권위 있는 나침반으로 평가받는다.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현대미술의 시작’을 대대적으로 알렸던 위대한 모더니즘 운동, 그 최전선에 섰던 대표주자들이 바로 큐비스트들이었다.

 

‘퐁피두센터 한화’가 첫 개관 전시의 타이틀로 다른 사조가 아닌 <큐비스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 자체가, 현대미술의 뿌리와 정통성을 가장 정공법으로 보여주겠다는 거대한 상징이자 선언인 셈이다. 그 치열했던 전위적 실험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파리 퐁피두센터의 오리지널 소장품들을 통해, 우리는 100여 년 전 미술 판도를 뒤흔들었던 혁신의 에너지를 가장 순도 높게 마주하게 된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은 단순히 교과서 속 거장의 명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인증샷 레이스를 넘어선다. 피카소가 과감히 해체한 선 사이로, 들로네의 빛나는 색채 속으로, 피카비아의 춤추는 선 위로, 그리고 레몽 뒤샹-비용의 거대한 기계 말 앞에서 큐비스트들이 던졌던 질문과 마주해 보길 바란다.

 

연대기적 흐름과 작품의 맥락을 머릿속에 넣고 전시장 문을 열어보자. 그 순간 큐비즘은 더 이상 난해한 미술사가 아니라, 왜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