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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서울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 전시 후기ㅣ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현장 관람을 추천하는 이유

by artstrollnote 2026. 6. 26.

하나의 시점을 넘어 공간으로: 퐁피두센터 한화가 조명한 큐비즘의 스케일

퐁피두센터 한화 건물 외관 이미지 -ArtStrollNote
퐁피두센터 한화 건물 외관 이미지

1. [건축의 대전환] 황금빛 수직 수족관에서 투명한 수평 미술관으로

우리 기억 속 63빌딩은 어두운 아쿠아리움과 초고층 전망대로 대표되던, 외부와 단절된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다. 그러나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는 이 공간을 한강의 수평적 개방감과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빛의 상자’로 탈바꿈시키며 대전환을 선언했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으로 서울의 기념비적 수직성을 상징했던 63빌딩의 금빛 외벽이 하늘과 한강의 빛을 강하게 반사한다면, 새롭게 증축된 미술관은 우윳빛 반투명 유리로 감싼 수평적 형태를 통해 그 빛을 부드럽게 머금는다.

 

이 대비는 건물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입구로 들어서면 원형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부드러운 자연광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과거 외부와 차단되었던 장소는 이제 외부의 빛과 풍경을 내부로 연결하는 개방적인 전시 공간으로 변모했고, 관람객은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전시장 안으로 이끌린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The Cubists: Inventing Modern Vision)》은 20세기 미술의 대전환점을 이룬 국제적 예술 운동 큐비즘을 중심으로, 유럽과 한국 작가 54명의 작품 112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2. [공간과 조각] 따스한 ‘빛의 상자’ 안에 자리한 뒤샹-비용의 《대형 말》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원형 천창에서 낙하하는 은은한 빛이 가장 먼저 닿는 곳에는 레몽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의 거대한 조각 《대형 말(Le Grand Cheval)》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흥미로운 대비가 펼쳐진다. 파리의 오리지널 퐁피두센터는 파이프와 배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차갑고 전위적인 하이테크(인더스트리얼) 건축의 상징이다. 반면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강의 빛을 머금은 따뜻하고 모던한 공간이다. 파리가 품었던 차갑고 날 선 큐비즘의 소장품이 서울의 따스한 ‘빛의 상자’에 담기며 새로운 표정을 짓는다.

 

대형 말, 레몽 뒤샹-비용 作 -ArtStrollNote
전시장 전경 사진 1: 천창의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퐁피두센터 한화 진입부에 우뚝 선 레몽 뒤샹-비용의 《대형 말》 전경. 1914년/1976년, 청동에 검정 피막, 쉬스 주조소 주조(파리 국립현대미술 관 소장용), ed. 4/8, 150 × 97 × 153 cm Purchase, 1976. Centre Pompidou, Paris © Centre Pompidou, MNAM-CCI/Philippe Migeat/Dist. GrandPalaisRmn

 

 

원형 천창으로 스미는 자연광을 받아내는 육중한 검은색 조각은 퐁피두센터 한화가 마련한 화이트큐브의 정중앙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동물의 유기적 에너지와 숨가쁘게 변화하는 산업사회의 기계적 동력이 결합하는 격변기를 포착한 《대형 말》은 마치 오늘의 이 공간을 위해 제작된 듯, 혹은 이 작품을 위해 공간이 설계된 듯한 완벽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말’이라는 익숙한 생명체는 더 이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유기적인 곡선은 잘게 분절되고, 그 자리는 기계 부품을 연상시키는 각진 면과 구조가 대신한다. 《대형 말》은 단순한 동물 조각이 아니라, 당시 자연의 시대에서 기계의 시대로 넘어가던 인류의 불안과 기대를 입체적으로 번역한 큐비즘의 선언문에 가깝다.

 

작품 주위로 확보된 넉넉한 공간은 조각이 품고 있는 아우라를 더욱 증폭시킨다. 관람객은 작품 주위를 자유롭게 돌며 해체된 면과 구조들이 하나의 형상으로 다시 결합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초입의 강렬한 몰입을 지나 본격적인 전시장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외부 정원의 풍경과 빛을 그대로 투과시키는 대형 창으로 이어지는 카페 공간이 등장한다. 이 투명한 통로는 시각적 환기를 유도하는 동시에, 빛을 통해 관람객의 관람 리듬을 다시 한번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정밀한 동선 설계의 결과물이다.


3. [구조적 여백] 여유로운 배치가 만드는 몰입감

본격적인 화이트큐브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광활하게 확장된 공간이 전개된다. 퐁피두센터 소장품 중에서도 모더니즘의 핵심을 관통하는 수많은 마스터피스들이 등장한다.

 

거대한 전시장이 확보한 높은 층고는 대작들의 물리적 스케일을 수용하는 동시에, 작품 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충분한 여백을 제공한다. 사물의 본질을 집요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한 입체파 작품들은 그 시각 언어의 밀도가 매우 높아, 좁은 공간에 나열될 경우 피로감을 유발하기 쉽다. 전시장은 작품들이 각자의 독자적인 시각적 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연한 배치를 취했으며, 균일하게 설계된 조명 역시 관람객이 오롯이 작품의 구조와 역사적 맥락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한다.

 

실제로, 현장 관람자라면 피카소와 브라크, 들로네, 레제 등 주요 작가의 대형 작품들이 충분한 거리감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작품 간 비교 감상과 몰입이 수월함을 느꼈을 것이다.


4. [복층의 개방감] 피카소의 《메르퀴르》가 되살아나는 순간

건너편의 다음 전시장으로 발을 옮기면, 이번 전시의 물리적 정점이자 시각적 하이라이트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대형 무대막 《메르퀴르(Mercure)》가 전면에 등장한다.

메르퀴르 무대막, 파블로 피카소 作-ArtStrollNote
전시장 전경 사진 2: 복층 구조의 높은 벽면을 가득 채우며 발레 극장의 웅장한 스케일을 재현한 파블로 피카소의 《메르퀴르》 전경. 1924년, 파리, 캔버스에 아교 물감, 392 × 501 cm Purchase, 1955. Centre Pompidou, Paris ⓒ 2026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çois Tomasian/Dist. GrandPalaisRmn

 

 

두 개 층을 관통하는 복층 구조의 거대한 공간은 작품의 규모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위아래로 열린 시야 속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무대막을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은 더 이상 미술관이 아닌 극장의 객석에 들어선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관람객은 2층 갤러리로 올라가 무대막을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발레 공연장의 2층 객석을 떠올리게 한다.

 

초기 큐비즘이 사물의 형태를 잘게 해체하는 '분석적 큐비즘'에 집중했다면, 《메르퀴르》는 형태를 다시 단순화하고 재구성하는 '종합적 큐비즘'의 특징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연주자로 보이는 두 인물의 형상을 최소한의 선묘와 서로 어긋난 색면들을 겹쳐 배치했다. 명도 차이를 둔 색면들은 화면에 은근한 입체감을 부여한다. 가까이에서는 서로 분리된 형태로 보이지만, 몇 걸음 물러서면 다시 하나의 인물과 공간으로 결합된다. 사물을 해체한 뒤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하려 했던 큐비즘의 실험이 거대한 무대막 위에서 보다 대담하고 간결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메르퀴르》가 단순한 회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카소는 이 공연의 무대막뿐 아니라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에도 참여하며 공연 전체를 자신의 시각 언어로 통합하고자 했다. 즉, 큐비즘은 더 이상 캔버스 안에 머무르지 않고 무대와 공간, 공연 예술 전체로 확장되었다.

 

그렇기에 오늘날 퐁피두센터 한화의 복층 공간에서 《메르퀴르》를 마주하는 경험은 단순히 대형 그림 한 점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작품이 본래 공연 예술의 일부로 존재했던 맥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들며, 관람객은 큐비즘이 회화를 넘어 공간 전체로 확장되던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결국 이번 전시의 진정한 매력은 개별 작품 한 점에만 있지 않다. 한강의 빛을 끌어들인 건축 공간과 여유로운 동선, 그리고 그 안에 놓인 큐비즘의 마스터피스들이 서로 호응하며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경험에 있다. 사진과 도록만으로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이러한 공간적 감각이야말로 현장 관람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5. 직접 걸어본 전시장 관람 노트

전시 장소 퐁피두센터 한화 (63빌딩 별관 G층)
전시 기간 2026.06.04 ~ 2026.10.04
관람 요금 성인 28,000원
👉 할인 및 예매 바로가기
관람 시간 2시간 내외
(세계적 작품 112점을 여유롭게 감상)
혼잡도 평일 낮에도 관람객 많은 편
주요 작가 파블로 피카소, 레몽 뒤샹-비용, 페르낭 레제, 김환기, 유영국 등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 내 QR코드로 무료 이용 가능
무료 셔틀 여의나루역 앞 등 평일 이용 가능
👉 상세정보 바로가기
주차 전시 관람 시 평일 1시간 무료
(추가 시간당 6,000원)
관람 팁 작품별 벽면 설명 텍스트가 작아 식별이 다소 어려우므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QR코드 도슨트 이용을 적극 추천

 

★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전 제대로 보기
: 전시를 완벽하게 즐기는 3부작 가이드

 

👉 [1편] 왜 큐비스트들은 세상을 해체했을까
: 큐비즘의 탄생과 피카소와 브라크의 혁신

 

👉 [2편] 퐁피두센터 한화 현장 리뷰(현재글)
: 건축과 공간 속에서 경험한 큐비즘

 

👉 [3편] 한국에 도착한 큐비즘
: 김환기·유영국·박래현·이수억으로 이어진 한국적 변주